특별전 홍보자료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1주년 기념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

BAEKJE HISTORIC AREAS OF WORLD HERITAGE

김진경 (고고역사부 학예연구사)

국립중앙박물관은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하여 (재)백제세계유산센터와 공동으로 특별전 ‘세계유산 백제’를 2016년 11월 29일부터 2017년 1월 30일까지 특별전시실에서 개최합니다.

 약 700년을 이어온 고대왕국 백제의 역사는 수도를 두 차례 옮긴 시점을 기준으로 한성시기(기원전18~475), 웅진시기(475~538), 사비시기(538~660)로 나뉩니다. 서울과 공주, 부여, 익산에는 백제 도성을 비롯하여 역사적인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이 가운데 충청남도 공주시와 부여군, 전라북도 익산시에 흩어져 있는 백제 웅진‧사비시기의 대표적인 8개 유적을 일컬으며, 우리나라의 12번째 세계유산으로 2015년 7월 8일에 채택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석굴암과 불국사(1995)’, ‘경주역사유적지구(2000)’와  ‘고대 고구려 왕국의 수도와 묘지(2004, 중국)’, ‘고구려 고분군(2004, 북한)’과 함께 고대 삼국이 모두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백제는 중국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으며, 이를 다시 신라, 가야, 왜 등에 전해 주었습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5~7세기에 고대 동아시아에서 백제만의 고유한 특성을 지녔으며, 동시에 주변국과의 긴밀한 교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백제역사유적지구 유적들의 성격에 따라 도성, 사찰, 능묘를 주제로 구성하였습니다. 

  도성은 왕실과 일반 백성이 거주하였으며, 같은 시기 중국의 최신 사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자체적인 변용을 추구하는 과정의 산물입니다. 부흥의 땅으로서 웅진의 공산성, 계획도시 사비의 관북리 유적과 나성, 또 하나의 왕궁인 왕궁리 유적에는 당시의 행정조직과 계획적인 도성 건축의 증거가 잘 남아 있습니다. 관북리‧왕궁리 유적 내부 공간의 재현을 통해 백제가 도성제를 갖추어가는 과정과 백제 웅진‧사비시기 도성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당시의 행정, 경제(도량형), 건축, 생활상도 다양한 출토품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공산성에서 출토된 옻칠갑옷편, 마갑편 등을 보존처리 후 처음 공개하고, 부소산성 대형무기 등 당시 전쟁의 치열함과 마지막 백제의 긴박함을 되살려봅니다.

사찰은 특히 왕실의 바람이 잘 담겨져 있는 공간입니다. 백제의 사찰에는 중국의 남조나 북조, 수당隋唐은 물론 고구려와의 기술 교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백제의 문화 특성과 외부에서 들어 온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백제는 ‘사찰과 불탑이 많은 나라’라고 기록될 만큼 불교가 성행하였으며, 왕실에 의한 사찰 건립과 사리공양은 불교를 통한 왕권 강화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왕흥사지와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사리장엄 및 사리공양품은 발원자와 목적, 시기를 기록하여  국가적인 불교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부소산 내부의 사찰과 도성 중심부에 위치한 정림사지는 당시 백제 도성에서 사찰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초로 공개하는 왕흥사지 승방지에서 출토된 치미는 왕흥사의 규모와 의미를 짐작케 합니다. 

  능묘는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공간이자, 선왕을 통해 현왕의 권위를 유지하는 기능적 공간이기에 고대국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능묘는 왕조가 존속하는 동안 대를 이어 축조되었고, 선왕에 대한 배알拜謁과 제사 등 정치적인 행위가 지속되었습니다. 계속된 도굴과 박장薄葬 문화로 인해 현재 무령왕릉 외에는 피장자를 확정할 수 없지만, 송산리 고분군‧능산리 고분군‧쌍릉에는 백제 능묘의 특징이 잘 남아 있습니다.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에서 유행한 벽돌무덤 형태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당시 최고 수준의 부장품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서 수입된 도자기·동제다리미 등과 일본산 금송金松으로 만든 목관, 백제 장인이 만든 금속공예품 등이 부장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도성과 사찰 각지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기와 동전, 일본 토기 등은 고대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창구로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백제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인상들이 있습니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儉而不陋 華而不侈”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에 기록된 백제 왕궁을 설명하는 이 문구는 언제부턴가 백제의 문화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백제의 석탑에서도, 최고 수준의 금속공예품에서도 소박하고 온화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백제를 설명하는 최적의 표현이자, 백제를 한정하는 틀이 되었습니다. “다시 강한 국가가 되다. 更爲强國”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조에 기록된 이 문구는 475년 갑작스런 천도 이후 혼란을 수습하여 왕권의 안정을 이뤄낸 무령왕(재위 501~523)이 중국 양나라에 보낸 조서의 내용입니다. 이는 무령왕과 웅진 백제를 상징하는 문구이자, 백제 왕의 바람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의자왕의 비참한 최후와 패망의 역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백제를 기억하는 가장 강력한 인상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백제를 생각할 때 어떤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까? 웅진과 사비 시기 백제의 문화를 보여주고자 기획한 이번 전시를 계기로 고대국가 백제, 세계유산 백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貞觀十九年(정관19년)’명 옻칠 갑옷편 / 백제 645년 / 충남 공주 공산성 성안마을 / 국립공주대학교박물관  

2. 도수관용 기와 / 백제 6~7세기 / 층남 부여 관북리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3. 왕흥사지 목탑 사리구 / 보물 1767호 / 백제 577년 / 충남 부여 왕흥사지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4. 치미 / 백제 6세기 / 충남 부여 왕흥사지 건물지 남쪽(상부편), 북쪽(하부편) 출토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5. 미륵사지 석탑 사리구 / 백제 639년 / 전북 익산 미륵사지 /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6.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영기 / 백제 639년 / 전북 익산 미륵사지 /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